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아이티의 외딴 마을, ‘르 코르비에’. 낡은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밤이 되면 더욱 깊은 침묵에 잠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며들어 있었죠. 사람들은 굳게 걸어 잠근 나무 문 뒤에서 숨죽인 채, 희미하게 들려오는 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오래된 공포, 바로 ‘살아있는 시체’, 끔찍한 ‘좀비’에 대한 섬뜩한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어귀에는 ‘나르시스’라는 이름의 보코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오두막은 늘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고, 밤이면 기이한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죠. 나르시스의 눈빛은 마치 깊은 숲 속의 웅덩이처럼 검고 깊어,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그의 손은 늘 마른 약초와 기묘한 가루로 뒤덮여 있었고, 그의 입가에는 섬뜩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르시스를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그의 신비로운 능력에 의존하기도 했습니다. 병을 고치거나, 궂은 날씨를 점치거나, 심지어 사랑을 이루어주는 마법까지, 나르시스는 마을 사람들의 삶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 중에서도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바로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믿기 힘든 소문이었죠.
마을에는 젊고 성실한 농부 티모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웃음소리는 햇살처럼 밝았고,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풍요로운 결실이 맺혔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했고,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티모시는 알 수 없는 열병에 시달리며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약초꾼과 나르시스까지 찾아와 그를 치료하려 했지만, 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결국 며칠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젊고 착한 티모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깊은 슬픔에 잠겼고, 그의 장례식은 온 마을 사람들의 눈물 속에 치러졌습니다.
하지만 티모시의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부터, 마을에는 기묘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공동묘지 근처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목격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슬픔에 잠긴 유족들의 헛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격자들이 늘어났고, 그 그림자가 마치 죽은 티모시와 흡사하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마을에는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티모시의 어머니 엘리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달빛 아래, 그녀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땅속에 묻혀있어야 할 그녀의 아들, 티모시가 멍한 표정으로 옆집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눈은 생기를 잃고 깊은 웅덩이처럼 텅 비어 있었고, 그의 움직임은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말이죠.
엘리나의 비명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달빛 아래, 흙투성이의 티모시를 발견하고 숨을 멈췄습니다. 그의 몰골은 끔찍했습니다. 흙으로 뒤덮인 옷, 창백하게 질린 얼굴, 그리고 초점 없는 텅 빈 눈동자.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깨달았습니다. 티모시가 나르시스의 검은 마법에 걸려 ‘좀비’가 된 것이라고. 영혼이 육체를 떠났지만, 강력한 주술에 의해 다시 움직이는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후로 티모시는 밤마다 나르시스의 밭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묵묵히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무거운 수확물을 나르는 그의 모습은, 밝고 활기찼던 예전의 티모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슬프고 기괴한 광경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티모시를 볼 때마다 연민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저렇게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슬픔과, 자신들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르시스의 강력한 힘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에게 맞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멀리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티모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죠.
아이티 사람들은 좀비가 단순히 되살아난 시체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영혼이 온전한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강력한 주술의 힘에 의해 육체에 갇혀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비가 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함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질서가 깨지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허물어진 끔찍한 현상이었으니까요.
이처럼 아이티의 부두교 설화 속 좀비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식민 시대의 고통과 억압이라는 어두운 역사 속에서 탄생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채 영원히 타인의 손에 조종당하는 좀비의 모습은, 당시 아이티 노예들의 비참한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아이티 사람들은 밤마다 들려오는 망자들의 흐느낌 같은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슬픔과 공포를 함께 나누었던 건 아닐까요? 어쩌면 그들은, 언젠가 자신들도 저렇게 영원히 갇힌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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