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의 왕 브란 축복받은 자에게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브란웬, 빼어난 미모와 상냥한 마음씨를 가진 그녀는 브리튼의 자랑이자 희망이었습니다. 당시 브리튼과 이웃 섬나라 아일랜드는 미묘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브란은 이 불안한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브란웬을 아일랜드의 강력한 왕 마솔흐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두 왕국 간의 굳건한 동맹을 위한 중요한 외교적 조치였습니다.
성대한 결혼식이 브리튼에서 열렸습니다. 브란과 그의 신하들은 아일랜드의 왕 마솔흐와 그의 귀족들을 따뜻하게 맞이했고, 브란웬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마솔흐는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혼식은 양국의 화합을 상징하는 축제와 같았고, 브란웬은 아일랜드의 왕비로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남편과 함께 아일랜드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기운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결혼 잔치가 한창이던 어느 날 밤, 브란웬의 이복 오빠인 에프니시엔이 아일랜드 왕의 귀한 말들이 마구간에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브란웬과 브란의 어머니가 달랐던 에프니시엔은 평소부터 질투심 많고 심술궂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이번 결혼 동맹에서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생각했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에프니시엔은 아무도 모르게 마구간으로 숨어들어 아일랜드 왕의 소중한 말들의 윗입술과 꼬리를 모조리 잘라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단순한 장난이나 심술궂은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말은 고대 사회에서 중요한 재산이자 권력의 상징이었기에, 에프니시엔의 행동은 아일랜드 왕과 그의 왕국에 대한 심각한 모욕으로 여겨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끔찍하게 훼손된 말들을 발견한 아일랜드인들은 격분했습니다. 마솔흐 왕은 브란에게 사신을 보내 강력하게 항의했고, 브란은 자신의 혈육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에 깊이 사과하며 막대한 배상을 약속했습니다. 브란은 아일랜드에 자신의 가장 훌륭한 말들과 함께, 놀라운 능력을 가진 마법의 솥을 선물했습니다. 그 솥은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되살아난 자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솔흐 왕은 브란의 사과와 후한 배상에 일단 분노를 가라앉혔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브리튼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남아있었습니다. 아일랜드로 돌아온 마솔흐는 브란웬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왕비로서 존중하지 않았고, 점차 냉담하고 무정하게 변해갔습니다.
결국 마솔흐는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브란웬을 왕비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하녀로 강등시켜 버렸습니다. 그녀는 매일같이 힘든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아일랜드인들의 끊임없는 멸시와 조롱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브란웬은 밤마다 고향 브리튼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지새웠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벗어날 날만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브란웬은 여전히 아일랜드에서 고통받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더욱 커져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란웬은 영리한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녀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붙잡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브란웬은 새에게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속삭이고, 브리튼으로 날아가 오빠 브란에게 이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브란웬의 전갈을 받은 브란은 여동생의 고통스러운 처지에 격노했습니다. 그는 즉시 브리튼의 모든 전사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고, 거대한 함대를 이끌고 아일랜드로 향했습니다. 브란의 군대는 엄청난 규모였고, 브란 자신은 거인과 같은 거대한 체구를 가진 존재였기에 그의 등장은 아일랜드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브란의 군대가 아일랜드 해안에 도착하자, 아일랜드 왕 마솔흐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는 브란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싶었기에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습니다. 마솔흐는 브란에게 사신을 보내 화해를 제안했고, 브란은 자신의 여동생을 안전하게 돌려보낸다면 평화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마솔흐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브란과 그의 군대를 함정에 빠뜨려 한꺼번에 제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솔흐는 브란과 그의 주요 전사들을 초대하여 평화 회담을 열기로 하고, 그들을 위해 특별히 지어진 거대한 집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 안에는 브리튼 군사들을 몰래 공격할 수 있도록 숨겨진 병사들이 가득했습니다.
브란의 군대가 그 집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에프니시엔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습니다. 그는 집 안의 상황을 몰래 엿보고 아일랜드인들의 음모를 알아차렸습니다. 에프니시엔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발로 집의 기둥을 힘껏 걷어찼고, 숨어있던 아일랜드 병사들은 기둥과 함께 무너져 내려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에프니시엔의 기지로 브리튼 군대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평화 회담은 결국 결렬되고 두 왕국 간의 처절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하게 이어졌습니다.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용감한 전사들은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브란은 거대한 몸집과 강력한 힘으로 아일랜드 군을 압도했지만, 아일랜드 역시 마법의 솥을 이용하여 죽은 자들을 되살려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되살아난 자들은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결국 브리튼 군은 아일랜드 군을 거의 전멸시키기에 이르렀지만, 브란 역시 전투 중 독화살에 맞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브란은 자신의 남은 부하들에게 자신의 머리를 잘라 브리튼으로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런던의 하얀 언덕에 묻히면 외침이 없는 한 어떤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브리튼인은 단 일곱 명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브란의 머리를 소중히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아일랜드에는 브란웬만이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녀는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땅과 수많은 죽은 자들의 모습을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결국 브란웬은 사랑하는 오빠와 조국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이 멎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브란의 머리를 가지고 브리튼으로 돌아온 일곱 명의 생존자들은 하를레흐와 궝흘레스라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슬픔을 달랬습니다. 그들은 브란의 머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브란의 유언에 따라 그의 머리를 런던의 하얀 언덕에 묻었습니다.
마비노기의 두 번째 가지는 이처럼 브란웬의 비극적인 결혼과 그로 인해 벌어진 처절한 전쟁, 그리고 복수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에프니시엔의 사소한 질투심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고, 결국 두 왕국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슬픔과 함께 인간 본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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