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면 교토의 백성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밤의 장막이 내려앉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림자, 바로 오에 산(大江山)의 악귀, 슈텐도지(酒呑童子) 때문이었죠. 붉은 낯짝에 험상궂은 눈, 툭 튀어나온 뿔은 마치 벼락 맞은 늙은 소나무 가지 같았고, 입을 벌릴 때마다 드러나는 날카로운 이빨은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더욱 크게 만들었습니다.
슈텐도지는 단순한 요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니들의 우두머리, 그야말로 악의 화신과 같았습니다. 밤마다 산에서 내려와 교토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홀연히 납치해 갔습니다. 붙잡힌 처녀들은 오에 산 깊숙한 곳, 핏빛으로 물든 그의 소굴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는 슈텐도지가 그들을 잡아먹는다고 수군거렸고, 어떤 이는 끔찍한 노예로 부린다고 두려워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슈텐도지의 악행은 심해져 갔고, 교토는 마치 깊은 병에 걸린 듯 활기를 잃어갔습니다. 임금님은 군사를 보내 슈텐도지를 토벌하려 했지만, 험준한 오에 산의 지형과 슈텐도지의 귀신같은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의 절망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밤마다 피어오르는 괴이한 불빛은 그들의 불안감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습니다. 바로 용맹하기로 이름난 무사, 미나모토노 요리미츠(源頼光)였습니다. 그는 임금님의 명을 받들어, 혹은 스스로의 정의감에 불타올라 슈텐도지 토벌에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요리미츠는 칼솜씨는 물론 지략 또한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혼자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슈텐도지를 상대하기 위해,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충직한 네 명의 무사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각자 뛰어난 검술과 용맹함을 자랑하는 요리미츠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요리미츠와 그의 부하들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오에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산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 그리고 짙은 안개는 마치 슈텐도지가 쳐 놓은 덫과 같았습니다. 며칠 밤낮을 헤맨 끝에 그들은 마침내 오에 산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슈텐도지의 소굴 근처에 다다랐습니다.
소굴의 분위기는 음산했습니다. 뼈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섬뜩한 기운이 주변을 감돌았습니다. 요리미츠는 잠시 숨을 고르며 작전을 세웠습니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무모했습니다. 그는 꾀를 써서 슈텐도지에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리미츠는 그의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늙은 산속 수행자들로 변신하여 슈텐도지에게 접근할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의 약점을 이용하여 틈을 노리자."
그러자 무사들은 요리미츠의 지시에 따라 낡은 승려복으로 갈아입고 얼굴에는 주름살 분장을 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오랜 수행으로 지친 늙은 수도승들처럼 조용히 슈텐도지의 소굴로 다가갔습니다. 소굴의 입구에는 험악한 인상의 오니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요리미츠 일행은 공손하게 합장하며 말했습니다.
"저희는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들입니다.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보초 오니들은 수상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았지만, 꾀죄죄한 모습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소굴 안은 더욱 끔찍했습니다. 납치된 듯 보이는 젊은 여인들이 창백한 얼굴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에는 술병과 음식 찌꺼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안쪽, 으리으리한 옥좌에는 덩치 큰 슈텐도지가 술잔을 기울이며 껄껄 웃고 있었습니다. 그의 옆에는 다른 오니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요리미츠 일행은 슈텐도지 앞에 나아가 정중하게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리미츠가 대표로 나서서 말했습니다.
"저희는 먼 나라에서 온 수행자들입니다. 저희가 가져온 특별한 술이 있는데, 대왕께 맛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요리미츠는 미리 준비해 온 화려한 술병을 슈텐도지에게 건넸습니다. 슈텐도지는 술병을 받아 들고 눈을 번뜩였습니다. 병에서 풍겨오는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는 그의 코를 자극했습니다. 사실 그 술은 요리미츠가 슈텐도지를 속이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독주였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술과 같았지만, 그 안에는 강력한 독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슈텐도지는 의심 없이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크흐, 과연 향기로운 술이로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껄껄 웃으며 요리미츠 일행에게도 술을 권했습니다. 요리미츠 일행은 속으로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술을 받아 마시는 척만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슈텐도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이 서서히 그의 몸에 퍼져나간 것입니다. 그는 비틀거리며 옥좌에 기대앉더니, 점점 정신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의 옆에 있던 다른 오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요리미츠는 눈빛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에 주변의 공기가 압도되는 듯했습니다. 함께 변장했던 네 명의 무사들도 동시에 본래의 용맹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이다!"
요리미츠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그들은 칼을 뽑아 들고 잠든 오니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덩치 큰 오니들은 속수무책으로 칼날 아래 쓰러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리미츠는 그의 손에 들린 명검 '도지기리(童子切)'를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이 악귀는 내가 베어 없애리라!"
요리미츠의 칼날은 거침없이 슈텐도지의 목을 향해 내려꽂혔습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슈텐도지의 커다란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굴러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슈텐도지의 머리는 잘린 순간에도 눈을 부릅뜨고 요리미츠를 노려보며 달려들었습니다. 요리미츠는 재빨리 투구를 단단히 고쳐 썼고, 슈텐도지의 머리는 투구에 부딪히며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마침내 슈텐도지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소굴에 갇혀 있던 여인들은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요리미츠와 그의 부하들은 슈텐도지의 머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오에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교토로 돌아오자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혔던 악귀가 사라졌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후 교토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슈텐도지의 이야기는 용감한 무사와 그의 충직한 부하들이 악을 물리친 영웅담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특히 슈텐도지의 목을 벤 칼, 도지기리는 그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소중히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일본의 국보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민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비노기 첫 번째 가지: 푸윌 디베드의 왕자, 저승과 사랑을 엮은 영웅의 서사 [웨일스 신화] (49) | 2025.04.14 |
---|---|
영원한 삶의 종말, 강림도령: 죽음의 질서를 세운 영웅의 대서사 (36) | 2025.04.13 |
밤의 속삭임, 망자의 그림자: 아이티 좀비 설화의 섬뜩한 진실 (35) | 2025.04.12 |
로스 야노스를 울리는 저주의 휘파람 소리: 남미의 핏빛 전설, 엘 실본 (41) | 2025.04.11 |
도깨비 다리의 비밀: 욕심쟁이 부자와 장난꾸러기 도깨비들의 유쾌한 한판 (37) | 2025.04.09 |
젖은 머리카락 아래 숨겨진 욕망: 누레온나의 사냥 일지 (35) | 2025.04.08 |
영웅 따위 두렵지 않다: 케토의 마지막 바다 (47) | 2025.04.07 |
메두사의 슬픈 독백: 저주받은 아름다움의 이야기 (52) | 2025.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