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드 왕국의 푸윌은 현명하고 용맹한 왕자였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새로운 경험과 모험에 대한 갈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푸윌은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함께 울창한 숲 속으로 사냥을 나섰습니다. 숲은 깊고 고요했으며,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습니다. 한참 동안 사냥을 즐기던 푸윌은 문득 평소와는 다른, 눈부시게 흰 사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된 푸윌은 자신의 사냥개들을 풀어 그 사슴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사슴은 쏜살같이 숲 속을 가로질렀고, 푸윌과 그의 사냥개들은 끈질기게 뒤를 쫓았습니다. 마침내 사슴은 넓은 초원 끝자락에서 멈춰 섰고, 푸윌이 활시위를 당기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사냥개 무리가 흰 사슴을 덮쳤습니다. 그 개들은 푸윌의 개들과는 달리 털 색깔이 붉은색이었고, 귀는 뾰족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푸윌은 자신의 사냥감을 빼앗긴 것에 분개하여 붉은 개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한 명의 기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회색빛 말을 타고 있었고, 검은색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기수는 푸윌에게 정중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푸윌 디베드의 왕자시여, 어찌하여 저의 사냥개들을 쫓으셨습니까? 그 흰 사슴은 저의 것이었습니다."
푸윌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사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 사슴이 당신의 것인 줄 몰랐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기수는 자신을 아라운이라고 소개하며, 저승 세계인 아눈(Annwn)의 왕이라고 밝혔습니다. 푸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인간 세상의 왕자인 자신이 저승 세계의 왕과 마주하게 되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라운은 푸윌에게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랜 숙적인 그와울(Gwawl) '강한 손'의 아들과 싸워야 하는데, 일 년 동안 서로의 모습과 왕국을 바꾸어 생활하며 푸윌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푸윌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아라운의 간곡한 부탁과 모험심에 이끌려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푸윌은 아라운의 모습으로 아눈에서 일 년 동안 왕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라운의 신하들을 다스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지냈지만, 계약에 따라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약속된 날이 다가왔고, 푸윌은 아라운의 숙적인 그와울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푸윌은 아라운의 조언에 따라 단 한 번의 강력한 일격으로 그와울을 제압했고, 아눈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일 년 후, 푸윌은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디베드를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눈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욱 현명하고 용감한 군주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푸윌은 자신의 영토를 거닐던 중, 눈부시게 하얀 말을 탄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마치 공기처럼 가볍게 움직였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푸윌은 그녀를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후, 푸윌은 다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푸윌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어찌하여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까?" 여인은 자신을 리아논이라고 소개하며,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푸윌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푸윌은 리아논의 아름다움과 슬픔에 마음이 끌려 그녀를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리아논은 푸윌에게 자신의 결혼 상대자인 그와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와울은 강력한 힘을 가진 자였지만, 교활하고 속임수를 잘 쓰는 인물이었습니다. 리아논은 푸윌에게 자신의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며, 그곳에 나타나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약속된 날, 푸윌은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함께 리아논의 결혼식 장소로 향했습니다. 화려하게 차려진 연회장에서 그와울은 리아논과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푸윌은 거지 차림으로 변장하고 연회장에 들어가 그와울에게 작은 부탁을 했습니다. "존귀하신 그와울님, 저는 오랜 여행으로 지쳐 쓰러질 지경입니다. 부디 저에게 이 작은 가방만큼의 음식만이라도 베풀어 주십시오."
그와울은 거드름을 피우며 푸윌의 작은 가방에 음식을 담아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음식을 넣어도 가방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와울은 당황하여 자신의 모든 음식을 가방에 쏟아 넣었지만, 가방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와울은 자신의 몸까지 가방 속에 집어넣었고, 그러자 푸윌은 재빨리 가방의 입구를 묶어 그와울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푸윌은 그와울을 묶어놓고 리아논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자유입니다. 당신의 진정한 배우자는 바로 나입니다." 리아논은 기뻐하며 푸윌의 손을 잡았습니다. 푸윌과 리아논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몇 년 후, 푸윌과 리아논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아들에게 프러데리(Pryderi)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밤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궁궐 안팎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리아논이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당시의 법에 따라, 왕비가 아이를 잃으면 그 죄를 씻기 위해 특별한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리아논은 매일 성문 앞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며, 그들의 말에 재갈을 물리고 그들을 등에 업고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테이르논 트루프 리안트(Teyrnon Twrf Liant)라는 영주가 자신의 암말이 매년 새끼를 낳지만, 태어난 직후 사라지는 기이한 일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 밤새도록 마구간을 지켰고, 마침내 거대한 발톱을 가진 괴물이 나타나 새끼를 훔쳐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테이르논은 용감하게 괴물과 싸워 물리치고, 괴물이 남기고 간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그 아기는 놀랍게도 푸윌과 리아논의 아들 프러데리와 똑 닮아 있었습니다.
테이르논은 아이를 정성껏 키웠고, 7년 후 아이는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느 날, 테이르논은 푸윌을 찾아가 그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푸윌은 자신의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 기쁨에 눈물을 흘렸고, 리아논의 누명을 벗길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프러데리가 돌아오자 리아논은 다시 왕비로서의 권위를 되찾았고, 푸윌과 리아논, 그리고 프러데리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푸윌은 아라운과의 약속을 지키고, 리아논과의 사랑을 쟁취했으며, 잃어버렸던 아들까지 되찾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용기, 지혜, 그리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한 인간의 험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웨일스 신화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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