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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

영웅 따위 두렵지 않다: 케토의 마지막 바다

by 오하81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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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토, 심연에서 일어나다 (Ceto Rises from the Abyss)

깊은 심연의 냉랭한 어둠 속에서 나의 존재는 태어났다. 가이아의 뼈대와 폰토스의 끊임없는 물결로부터 빚어진, 태초의 공포 그 자체. 나의 이름은 케토, 바다 밑바닥에 도사린 형언할 수 없는 힘의 현신이다. 올림포스의 혈기 왕성한 신들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이 푸르고 광활한 영역의 불가해한 법칙을 체현해 왔다.

 

나의 삶은 끝없이 펼쳐진 해저 협곡과 울창한 해초 숲 사이를 유영하며 흘러갔다. 내 눈은 한때 찬란했던 티탄 신들의 몰락과 새로운 신들의 부상을 목격했다. 나는 힘의 변화와 그들이 일으키는 덧없는 소란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인간이라는 작고 하찮은 존재들이 해안가에 옹기종기 모여 자신들의 짧은 생을 영위하는 모습은 그저 희미한 배경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를 호령하는 포세이돈의 목소리가 심연을 울렸다. 그의 분노는 마치 해저 화산의 폭발처럼 격렬했다. 아이티오피아의 인간 여왕, 카시오페이아가 감히 바다의 님프들보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고 뽐냈다는 것이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인간의 자만심을 극도로 혐오했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삼지창을 휘두르며 나를 불렀다. 케토, 일어나라. 저 가소로운 인간의 허영심에 바다의 심판을 보여주어라.

 

나는 그의 명령에 묵묵히 따랐다. 신들의 뜻은 거스를 수 없는 심해의 흐름과 같았다. 나는 거대한 몸을 일으켜 어둡고 차가운 심연에서 솟아올랐다. 내 몸통은 해저 동굴처럼 거대했고, 비늘은 겹겹이 쌓인 갑옷처럼 빛났다. 날카로운 지느러미는 거친 파도를 일으켰고, 나의 거대한 꼬리는 바다를 가르며 맹렬한 속도로 나아갔다.

 

아이티오피아의 해안에 다다르자, 인간들의 작은 세상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배는 산산이 부서져 물거품 속으로 사라졌고, 해안가의 마을은 나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다. 나는 포세이돈의 분노를 온전히 드러내며, 닿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인간들의 비명과 절규는 마치 작은 물새들의 울음소리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케토, 안드로메다에게 다가가다 (Ceto Approaches Andromeda)

며칠 동안 나는 해안가를 따라 파괴를 일삼았다.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나의 분노에 짓밟혔다. 그러자 그들의 왕은 절박한 심정으로 신탁에 매달렸다. 신탁은 섬뜩한 답을 내놓았다. 왕의 아름다운 딸, 안드로메다를 나에게 제물로 바쳐야만 재앙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초래된 결과를, 연약한 어린 소녀에게 떠넘기려 하다니. 나는 그들의 한심한 행동을 경멸하며, 제물이 바쳐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안드로메다가 바닷가의 바위에 묶인 채 나타났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새벽의 여명처럼 눈부셨지만, 공포에 질린 그녀의 눈은 마치 잡힐 듯 사라지는 별빛처럼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인간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작은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소리가 마치 심해의 메아리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인간, 페르세우스였다. 그는 손에 이상하게 빛나는 칼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인간의 영웅이라니, 가소로운 존재들이 감히 신의 분노에 맞서려 하다니. 나는 비웃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페르세우스와의 격전 (The Battle with Perseus)

우리의 싸움은 격렬했다. 그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나의 공격을 피했고, 그의 칼은 날카로운 이빨처럼 나의 비늘을 뚫으려 했다. 나는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그를 바다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는 재빠르게 피하며 나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그의 눈에는 인간 특유의 어리석은 용기가 빛나고 있었다.

 

싸움은 예상외로 길어졌다. 인간의 영웅은 끈질겼고, 그의 칼날은 점차 나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나는 분노와 당황스러움에 휩싸였다. 태초부터 존재해 온 나에게, 하찮은 인간 따위가 맞설 수 있다니.

 

마지막 순간, 그는 반짝이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 표면에 비친 나의 모습은 낯설고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칼날이 나의 목을 꿰뚫었다. 고통과 함께 나의 거대한 몸은 힘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차갑고 어두운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무력감이었다.

 

인간들은 승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승리는 덧없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심연의 공포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의 죽음은 단지 한때의 소동일 뿐, 바다는 영원히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심해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공포가 깨어나 이 하찮은 인간 세상을 덮칠 것이다. 케토의 자손들은 영원히 바다를 지배할 테니.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설화의 일부를 바다 괴물 케토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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