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이제 곧 철거될 구(舊) 본관 건물을 정리하던 신입 교사 ‘은영’은 해가 완전히 저문 뒤에야 마지막 상자를 테이프로 봉했다. 윙- 소리를 내며 깜빡거리는 복도의 낡은 형광등만이 그녀의 유일한 동무였다. 어릴 적 다녔던 모교에 교사로 돌아왔다는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이 낡은 건물과 작별할 시간이었다.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다.”
혼잣말을 하며 복도로 나섰다. 교직원 화장실은 이미 폐쇄된 후였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복도 끝, 학생들이 쓰던 낡은 화장실로 향했다. 자신이 어릴 적에도, 그리고 얼마 전까지 가르치던 아이들도 무서워하며 쉬쉬대던 바로 그 장소였다.
‘화장실의 하나코 씨.’
피식 웃음이 났다. 어른이 된 지금, 그런 낡은 괴담은 그저 귀여운 추억일 뿐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그녀를 맞았다. 타일 곳곳은 깨져 있었고, 거울엔 정체 모를 얼룩이 가득했다. 총 다섯 개의 칸 중, 유독 세 번째 칸의 문만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문에는 오랜 세월 아이들이 긁어댄 낙서와 함께 ‘하나코’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은영은 첫 번째 칸을 사용하고 나와 손을 씻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울을 통해 등 뒤의 화장실 칸들을 보는데,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닫혀 있던 세 번째 칸의 문틈으로, 아주 잠깐, 붉은 옷자락 같은 것이 스치듯 보인 것 같았다.
‘잘못 본 거겠지.’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서둘러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장난기 섞인 치기 어린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에게 ‘그런 건 다 거짓말이란다’ 하고 멋지게 말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괴담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 걸까.
은영은 홀린 듯 굳게 닫힌 세 번째 칸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하던 주문을 떠올리며,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선명한 노크 소리가 낡은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나코 씨, 계십니까?”
정적이 흘렀다. 역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봐, 아무것도 없잖아.” 은영이 멋쩍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나가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네.”
문 너머, 바로 등 뒤에서 작고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농담이나 환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대답. 은영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잘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세 번째 칸의 문이 저절로, 아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은영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문이 활짝 열리고 드러난 칸의 내부는 어두웠다. 아니, 어둠 그 자체였다. 화장실의 희미한 불빛조차 삼켜버리는, 비현실적인 심연 같은 어둠.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도해야 할까? 아니다. 공포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칸 안의 낡은 변기로 향했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변기 물 안에서, 작고 하얀 손 두 개가 천천히 올라와 변기 가장자리를 꽉 붙잡는 것을. 이어서, 흠뻑 젖은 검은 단발머리가 물 위로 솟아올랐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어린 소녀의 것이었지만,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뻥 뚫린 검은 구멍이었다. 붉은 치마가 아닌, 피에 젖은 듯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그것은, 입꼬리만 기괴하게 끌어올리며 은영을 향해 속삭였다.
“선생님… 왜 이제야 불렀어요…?”
그것의 목소리는 더 이상 가냘프지 않았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우는 듯한, 끔찍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것은 변기에서 튀어 오르듯 솟아나 은영을 향해 앙상한 팔을 뻗었다. 은영의 비명은 낡은 화장실을 가득 채우기도 전에, 세 번째 칸의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삼켜져 버렸다.
다음 날, 철거를 위해 현장을 찾은 인부들은 구 본관 건물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여자 화장실 세 번째 칸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 변기 뚜껑 위에는 교사용 명찰 하나만이 젖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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