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잦았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에 혼자 남아 마지막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창밖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일을 끝마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회사 건물을 나섰을 때, 온몸으로 엄습해오는 새벽의 한기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아, 피곤하다… 빨리 들어가서 씻고 눕고 싶다.”
나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텅 빈 거리를 걸어 아파트로 향했다. 우리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였다. 공동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어둡고 긴 복도가 나를 맞았다.
15층짜리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는 단 한 대뿐. 평소에도 워낙 느리고 덜컹거림이 심해 웬만하면 계단을 이용했지만, 오늘은 너무 지쳐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었다.
‘띵’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13층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 육중한 쇠문이 닫히는 순간,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덜컹, 덜컹…’
엘리베이터는 평소보다 더 심하게 요동치며 느릿느릿 올라가기 시작했다. 4층, 5층, 6층… 숫자가 하나씩 바뀔 때마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때였다.
‘덜컹!’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춰 섰다. 누군가 밖에서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끼이익… 문이 열리자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눌렸나 싶어 ‘닫힘’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는 여전히 나 혼자였다. 잘못 들었나?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내 귓가에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문은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었다. 그때, 복도 저편 어둠 속에서 무언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키가 껑충하게 크고 비쩍 마른 남자였다. 남자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둠과 뒤섞여 마치 그림자처럼 보였다. 남자는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나는 공포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그의 눈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타, 타실 건가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남자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기만 했다. 그의 주변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겨왔다. 마치 무언가 오랫동안 썩어가는 듯한 냄새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의 심정으로 ‘닫힘’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육중한 쇠문이 거의 다 닫히려는 찰나, 남자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는 보고야 말았다.
남자의 얼굴은 온통 검붉은 피로 뒤덮여 뭉개져 있었고, 눈, 코,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시커먼 구멍만 뻥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아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지만, 목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남자의 뻥 뚫린 입이 기괴하게 벌어지며 내게 속삭였다.
“4시 44분…”
‘쿵!’
문이 완전히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덜컹거리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공포에 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 쳤다.
‘띵.’
13층에 도착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갔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몇 번이나 틀리고 나서야 겨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현관문을 잠그고 모든 걸쇠까지 걸어 잠근 후에야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꿈일 거야… 헛것을 본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거실로 들어선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거실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가 정확히 새벽 4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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