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합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성, 그중에서도 백마강변의 큰 시장은 늘 제 삶의 활력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죠. 저도 오늘 팔 곡식을 조금이나마 더 팔아볼 요량으로 서둘러 장터에 나섰습니다.
"싱싱한 채소 사 가세요!" "금방 짠 따끈한 기름 나왔습니다!"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소리, 맛있는 떡 냄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시장은 늘 생기가 넘쳤습니다. 저도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를 잡고 곡식을 펼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이었을까요. 갑자기 제 옆에 있던 떡 장수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왜 그러시오?"
제가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떨기만 했습니다. 마치 끔찍한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말이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저 멀리서 "으아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지만, 그 비명은 삽시간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소리치고, 서로 밀치며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난 거야!"
저도 영문을 알 수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혼란에 빠진 사람들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혼비백산 도망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마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모두를 덮치는 듯한 섬뜩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곡식 자루를 내팽개치고 사람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습니다. 발밑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도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장사하던 물건들은 짓밟히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던 음식들은 땅바닥에 처참하게 쏟아져 있었습니다.
그날, 그 아수라장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밟혀 죽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날 우리를 그토록 극심한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괴물도, 이상한 소리나 냄새도 없었습니다. 그저 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공포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순식간에 마비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날의 기이한 현상을 "무고경주"라고 불렀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놀라 달아나게 만드는 괴물이라고 말이죠. 어떤 이들은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원한을 품은 귀신이 나타난 것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아직도 제 마음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공포로 몰아넣었던 형체 없는 존재… 그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공포는 실체가 있는 괴물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직감했던 백성들의 불안감이 집단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요. 나라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그 위태로움을 느끼는 것은 결국 힘없는 백성들의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돋곤 합니다. 형체 없는 공포, 무고경주의 기억은 아마 제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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