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누누(Nuno)는 포르투갈의 영혼, ‘사우다드(Saudade)’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아련한 슬픔. 그는 그 감성의 정수를 찾아 북부의 오래된 마을, 도루(Douro) 강 상류의 한적한 시골로 향했다. 그곳의 새벽안개가 자아내는 풍경은 전설적이었다.
그가 묵은 작은 여관의 주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파였다. 누누가 이른 새벽에 강가로 나갈 것이라 말하자, 그녀는 타르처럼 검은 커피를 내어주며 나지막이 경고했다.
“해가 뜨기 전에는 강가에 함부로 가는 게 아닐세. 특히 달 없는 그믐밤에는… ‘그들’이 나오거든.” “그들이요?” “밤의 세탁부들(As Lavadeiras da Noite). 강가에서 밤새도록 빨래를 하는 여인들이지. 그들의 일에 방해가 되면… 좋지 않아.”
노파의 말은 그저 낡은 민담처럼 들렸다. 누누는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 그런 신비로운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이라니. 그의 프로젝트에 더없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다음 날 새벽 3시, 누누는 카메라 장비를 챙겨 조용히 여관을 나섰다. 강가로 향하는 길은 안개로 자욱했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고, 오직 자신의 발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강물 소리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했다. 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강가에 도착하자, 안개는 더욱 짙어져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완벽한 구도를 찾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였다.
탁... 탁... 첨벙... 탁... 탁... 첨벙...
안개 너머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빨랫감을 돌에 내리치는 소리, 그리고 물에 헹구는 소리. 이 시간에 누가 빨래를 한단 말인가. 누누는 호기심에 이끌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안개가 엷어지는 강기슭, 바위들 사이로 몇 명의 여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희고 소박한, 옛 시대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강물에 무릎을 꿇은 채, 묵묵히 빨래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고요하고 경건해 보였다. 누누는 숨을 죽였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찾던 ‘사우다드’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전통적인 삶을 이어가는 여인들의 신성한 새벽 노동. 그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댔다.
렌즈를 통해 본 세상은 조금 더 선명했다. 여인들의 움직임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는 렌즈의 초점을 그들이 빨고 있는 흰 옷가지에 맞추었다.
그것은 흰 옷이 아니었다.
옷감은 온통 검붉은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이 옷을 물에 헹굴 때마다, 짙은 핏물이 강물 속으로 스며들어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들은 지금, 피에 젖은 수의(壽衣)를 빨고 있었다.
누누의 등골을 타고 오싹한 한기가 흘렀다. 손가락이 차갑게 굳어 셔터를 누를 수조차 없었다. 그 순간, 여인들 중 하나가 기계처럼 반복하던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누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뷰파인더를 통해, 누누는 그녀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녀의 얼굴은 물에 불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눈구멍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빈 눈 안에는 수백 년 묵은 슬픔과 차가운 분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녀가 누누를 발견하자, 강가를 채우던 규칙적인 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다른 여인들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완전한 정적. 이제 강가에는 누누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아… 아…”
누누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뒷걸음질 치다 발이 꼬여 넘어졌다. 손에서 미끄러진 카메라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카메라를 챙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네 발로 기어가다시피 하며 미친 듯이 여관을 향해 달렸다.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방에 뛰어 들어와 문을 잠그고 나서야,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았다. 꿈을 꾼 것일까.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그의 손은 차가운 물에 오랫동안 무언가를 비벼 빤 것처럼 퉁퉁 불어 있었고, 손톱 밑에는 붉은 때가 끼어 있었다. 어디서 베인 상처 하나 없는데도, 손 전체에서 희미한 피비린내와 축축한 옷감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 그의 귓가에 바람 소리 같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Ajuda-nos...” (우리를 도와줘...) “Torce...” (짜...)
누누는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환청이야. 이건 환각이야. 그는 자신의 이성을 증명하기 위해, 미친 듯이 강가로 다시 달려가 자신의 카메라를 주워왔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리 카드를 노트북에 꽂았다.
폴더 안에는 수십 장의 사진이 있었다. 안개 낀 강가의 풍경, 새벽의 푸른빛을 머금은 바위들… 모두 그가 여인들을 보기 전에 찍은 사진들이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 사진을 클릭했다.
사진은 심하게 흔들려 있었다. 그가 넘어지면서 찍힌 사진인 듯했다. 하지만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안개 낀 강가. 그리고… 바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인들의 모습.
그들의 텅 빈 눈이 사진 속에서도 그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누누는 공포에 질려 화면을 끄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사진의 한구석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여인들의 옆에, 그들과 똑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희미한 형체.
그것은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누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창문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초췌한 얼굴, 공포에 질린 눈. 그리고 그의 두 손은, 마치 보이지 않는 피 묻은 옷을 쥐고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천천히, 그리고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비틀어 짜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탁… 탁… 첨벙…
소리는 이제 그의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밤의 세탁부들은 새로운 일손을 찾았다. 누누는 포르투갈의 영혼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영혼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피 묻은 강가에 붙들리게 되었다. 그의 사진 작업은 끝났다. 그의 빨래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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