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화 속 혼돈과 파괴의 신, 세트

파괴의 신 세트

이집트 신화에서 세트는 가장 강력하고도 수수께끼 같은 신 중 하나입니다. 사막, 폭풍, 혼란, 그리고 외지인을 다스리는 신으로, 때로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주로 오시리스를 살해한 악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세트의 모습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 왔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특징은 바로 기이한 동물 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이 매혹적인 신, 세트의 다층적인 면모를 탐험하며 이집트 신화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묘한 동물 머리: 세트의 상징

세트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단연 독특한 동물 머리입니다. 흔히 "세트 동물" 또는 **"샤 동물"**이라고 불리는 이 머리는 잭칼이나 돼지와 비슷하게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정확히 어떤 동물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상 속의 동물입니다. 길고 구부러진 주둥이, 네모난 귀, 꼿꼿하게 뻗은 꼬리 등 기묘한 생김새는 세트의 야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왜 세트에게 이런 기묘한 동물 머리를 부여했을까요? 몇몇 학자들은 사막에 사는 멸종된 동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명확한 답은 여전히 미스터리 속에 남아있습니다. 다만, 이 독특한 머리가 세트를 다른 신들과 구별 짓는 강력한 시각적 상징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변화무쌍한 모습: 시대와 지역에 따른 다양한 해석

세트의 모습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었습니다. 초기 왕조 시대에는 인간의 몸에 세트 동물의 머리를 한 모습으로 비교적 일관되게 묘사되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묘사는 더욱 다양해지고 때로는 여러 동물의 특징이 혼합된 괴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트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초기에는 다소 긍정적인 면모도 지녔던 세트는, 오시리스 신화가 널리 퍼지면서 점차 악하고 파괴적인 이미지로 굳어졌습니다.

혼돈과 파괴의 신: 깊은 어둠 속에서 깨어난 힘

세트는 이집트 신화에서 혼돈, 무질서, 파괴를 상징하는 신입니다. 그는 사막의 신으로, 메마르고 척박한 땅을 다스리며, 예측할 수 없는 폭풍을 일으키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세트는 때로는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세트는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형인 오시리스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질투심 많고 폭력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세트는 형 오시리스를 시기하여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오시리스 살해를 저지릅니다.

오시리스 신화 속 세트: 형제 살해의 비극

오시리스 신화는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이 신화에서 세트는 자신의 형제인 오시리스를 시기하고 살해하는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번영을 가져온 자애로운 왕이었지만, 세트는 그의 왕좌를 빼앗기 위해 오시리스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 이집트 전역에 흩뿌립니다.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누이인 이시스는 여신 네프티스의 도움을 받아 흩어진 오시리스의 시신 조각들을 모아 다시 결합시키고, 마법으로 오시리스를 부활시킵니다. 하지만 부활한 오시리스는 더 이상 이승의 왕으로 머무를 수 없었고, 저승의 왕이 됩니다.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는 성장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세트와 기나긴 싸움을 벌입니다.

 

파괴적인 힘, 하지만... 혼돈 속의 질서

세트는 파괴와 혼돈의 신이지만, 이집트인들은 세트에게서 단순히 부정적인 면모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트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변화의 힘을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건설하는 것처럼, 세트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세트는 태양신 라가 밤마다 지하 세계를 항해할 때 혼돈의 뱀 아포피스로부터 태양신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세트가 파괴적인 면모와 함께 질서를 수호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비옥한 검은 땅을 다스리는 호루스와 메마른 붉은 땅을 다스리는 세트의 균형은 이집트의 조화로운 세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악인가, 혁명인가: 세트에 대한 엇갈린 평가

세트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오시리스 신화가 널리 퍼지면서 세트는 형을 살해한 악당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혁명가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초기 이집트에서는 세트가 상 이집트의 수호신으로 숭배받았으며, 그의 힘과 용맹함은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호루스 숭배가 강화되고, 특히 오시리스 신화가 이집트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세트의 이미지는 점차 부정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트의 양면적인 성격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남아있습니다.

세트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다

세트는 단순한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파괴적인 충동,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갈망을 반영하는 복잡한 상징입니다. 세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간 본성의 양면성과 혼돈과 질서의 공존, 그리고 변화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이끌어줍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혼란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과제입니다. 세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를 긍정하며, 내면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여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세르포파드(Serpop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