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잔디 위를 누비는 선수들의 열정, 그리고 관중석을 가득 메운 함성.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클럽 **토트넘 홋스퍼(Tottenham Hotspur)**를 떠올릴 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강력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클럽의 엠블럼과 경기장 꼭대기에서 위용을 뽐내는 **치피 더 코크럴(Chirpy the Cockerel)**입니다.
단순한 마스코트를 넘어, 이 용맹스러운 새는 토트넘 홋스퍼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팬들의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수탉이 이들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 늠름한 새는 고대 신화 속에서 어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오늘은 토트넘의 심장과도 같은 치피의 기원부터 신화적 상징성까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 "해리 홋스퍼"와 박차: 토트넘 마스코트 수탉의 탄생 비화
토트넘 홋스퍼의 상징인 치피의 기원은 클럽의 이름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클럽의 이름 '홋스퍼(Hotspur)'는 14세기 영국의 용맹한 귀족이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도 등장하는 기사, "해리 홋스퍼(Sir Henry Percy, 애칭 Harry Hotspur)" 경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성미가 급하고(hot-headed) 전투에서 말을 매우 빠르게 몰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때 말을 더 빨리 달리게 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 바로 **'박차(spur)'**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박차(spur)'**는 **싸움닭(fighting cock)**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싸움닭들은 발목 뒤에 날카로운 며느리발톱, 즉 자연적인 박차를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인공적인 박차를 달아 싸움 능력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용맹하고 지칠 줄 모르는 투지를 가진 싸움닭의 이미지는 해리 홋스퍼 경의 불굴의 정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토트넘 홋스퍼는 1921년 FA컵 결승전부터 클럽 엠블럼에 수탉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해리 홋스퍼 경의 용맹함, 그의 '박차', 그리고 싸움닭의 투지를 클럽의 핵심 정체성으로 삼고자 했던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보다 앞선 1909년에는 전직 선수였던 윌리엄 제임스 스콧(William James Scott)이 제작한 9피트 6인치(약 2.9미터) 높이의 청동 수탉상이 당시 홈구장이었던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의 서쪽 스탠드 지붕 위에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수탉상은 현재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남쪽 스탠드 지붕 위에 당당히 자리하며 클럽의 변치 않는 상징으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현재 토트넘 홋스퍼의 공식 마스코트로는 "처피(Chirpy)"라는 이름의 수탉과 그의 여성 파트너 "릴리(Lily)"가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처피는 1980년대 초에 처음 등장하여 1990년대 초에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으며, 릴리는 클럽의 오랜 별명인 "릴리화이츠(Lilywhites)"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2. 신화 속 수탉: 새벽, 용기, 그리고 빛의 전령
수탉은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의 신화와 설화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며, 그 의미 또한 매우 다채롭고 강력합니다.
- 새벽과 빛의 전령: 수탉의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상징은 바로 새벽을 알리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찬란한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수탉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새로운 시작, 희망, 부활, 그리고 악령을 물리치는 정화의 힘을 상징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수탉은 태양의 신 아폴론과 전령의 신 헤르메스에게 신성한 새로 여겨졌으며, 때로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도 연결되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는 황금 볏을 가진 수탉 굴린캄비(Gullinkambi)가 발할라에서 신들의 잠을 깨우고, 또 다른 수탉 피알라르(Fjalar)는 거인들을 깨워 세상의 종말인 라그나로크의 시작을 알린다고 전해집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수탉 파로다르쉬(Parodarsh)가 어둠의 악마들을 물리치는 빛의 사자로 여겨졌습니다.
- 용기와 경계, 그리고 전투의 상징: 수탉은 타고난 호전성과 용맹함,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경계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 병사들은 전투에 임하기 전 수탉 싸움을 보며 용기를 얻고자 했으며, 로마인들은 수탉을 전쟁의 신 마르스에게 봉헌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악령과 마녀를 쫓아낸다고 믿어 교회 첨탑이나 풍향계 위에 수탉 장식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빛과 경계를 상징하는 수탉이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신성한 공간을 보호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국 문화에서 수탉은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의 다섯 가지 덕목(오덕, 五德)을 갖춘 동물로 여겨져 길조와 용맹, 위엄의 상징으로 사랑받았습니다.
- 다산, 풍요, 그리고 생명의 힘: 일부 문화권에서 수탉은 왕성한 생식력 덕분에 다산과 풍요,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닭(수탉 포함)은 비교적 늦게 전해졌지만, 점차 다산과 재생의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며 수탉을 제물로 바치거나, 봄의 축제와 관련된 의식에 등장하는 경우도 여러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보호, 길조, 그리고 신성한 예언: 수탉은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의 새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수탉의 행동이나 울음소리, 심지어 모이를 쪼는 모습 등을 통해 신의 뜻을 읽는 점술(augury)이 행해졌으며, 신성한 인도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켈트 신화의 영향을 받은 로마 시대의 청동 수탉 조각상들은 이러한 보호와 예언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반영합니다.
3. 토트넘 홋스퍼와 수탉: 용맹불패 투지의 현대적 계승
토트넘 홋스퍼의 마스코트인 수탉은 단순히 귀엽거나 용맹해 보이는 동물을 선택한 것을 넘어, 클럽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앞서 살펴본 심오한 신화적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해리 홋스퍼 경의 불굴의 용맹함과 그의 '박차'에서 시작된 이 상징은, 지칠 줄 모르는 싸움닭의 투지와 결합하여 오늘날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의 불굴의 정신, 즉 **'To Dare Is To Do (도전하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다)'**라는 클럽의 모토를 대변합니다.
신화 속에서 수탉이 어둠을 물리치고 승리의 새벽을 알렸듯이, 토트넘 홋스퍼의 수탉 역시 경기장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상대 팀에게는 두려움을, 팬들에게는 불타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처피와 릴리는 이러한 클럽의 강인한 정신과 역사를 팬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전달하며, 토트넘 홋스퍼의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결론: 축구장을 넘어선 외침, 수탉이 전하는 메시지
결국 토트넘 홋스퍼의 수탉은 단순한 로고나 마스코트를 뛰어넘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인물의 용맹함에서 시작하여, 싸움닭의 끈질긴 투지를 거쳐, 신화 속 새벽의 전령이자 용기와 보호의 상징이라는 깊은 의미까지 아우르는, 클럽의 정신 그 자체를 담고 있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경기장의 함성 속에서,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 속에서, 그리고 팬들의 가슴속에서 토트넘 홋스퍼의 수탉은 언제나처럼 용맹하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를 향한 열망이자,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 바로 토트넘의 심장이 전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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