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의 산물, 바비 응예뻿(Babi Ngepet): 인도네시아 괴물 이야기

바비 응예뻿으로 변한 사람

 

오늘은 인도네시아 자바 신화에 나오는 괴물, 바비 응예뻿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바비 응예뻿은 단순한 괴물이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부를 얻기 위한 흑마법 의식인 **베스기한(Pesugihan)**의 산물입니다. 베스기한은 자바어로 부자를 뜻하는 "Sugih"에서 유래되었으며, 탐욕스러운 욕망이 빚어낸 어두운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

 

베스기한 의식을 통해 부를 얻는 자는 인간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모습이 아닌 짐승, 특히 멧돼지의 형상으로 변하거나 멧돼지 요괴에 홀리는 형태로 나타나며, 서구의 늑대인간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흑마법이 깃든 망토를 사용하여 자유자재로 멧돼지로 변신하는 존재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의식의 기원과 과정:

바비 응예뻿 설화는 구눙 카위(Gunung Kawi)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베스기한 의식을 원하는 자는 자바 동부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멧돼지 요괴를 찾아야 합니다. 요괴와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한 제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옥양목 꽃잎
• 향기로운 기름
• 찌마니 토종 흑닭의 피 한 사발

 

이 제물을 큰 나무 둥치 아래 두고 주문을 외우면 멧돼지 요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의식을 행하는 자는 요괴에게 소원을 빌고, 그 대가로 요괴의 타액을 얻어 계약을 맺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시전자는 아직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어린 자녀의 몸에 요괴의 타액을 바릅니다. 며칠 후, 아이는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탐욕의 제물로 바쳐 멧돼지 요괴와 계약을 완료하는 것입니다. 멧돼지로 완전히 변신하기 위해서는 멧돼지 요괴의 배설물을 먹어야 한다는 끔찍한 의식도 전해집니다. 최종적으로 요괴로부터 흑마법 망토 또는 예복을 받게 되며, 이때부터 바비 응예뻿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괴물의 모습과 능력:

바비 응예뻿은 멧돼지와 흡사하지만, 일반 멧돼지보다 훨씬 거대하고 흉측한 외형을 지녔습니다. 흙탕물처럼 탁한 눈, 피투성이 입, 그리고 인간의 얼굴이 뒤섞인 기괴한 모습은 공포감을 자아냅니다.

 

바비 응예뻿의 가장 큰 특징은 신비로운 도둑질 능력입니다. 멧돼지 모습으로 변신하여 사람들의 집에 몰래 침입, 몸을 벽이나 가구에 비비기만 해도 집안의 돈, 재물, 귀중품을 마법처럼 훔쳐낼 수 있습니다. 인간 형태로 돌아오면 훔친 재물은 망토 안에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바비 응예뻿

약점과 퇴치법:

놀라운 도둑질 능력과는 달리, 바비 응예뻿은 일반적인 멧돼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물이나 몽둥이를 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면 속수무책으로 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멧돼지 변신 의식에는 조력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의식을 행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변신을 시도하고, 다른 한 명은 촛불을 지키는 역할을 맡습니다. 물통 위에 띄워진 촛불은 시전자와 멧돼지 요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촛불이 약해지거나 꺼지는 것은 시전자에게 위험이 닥쳤음을 의미합니다.

 

바비 응예뻿이 위험에 처했을 때, 조력자가 촛불을 재빨리 불어 끄면 멧돼지는 즉시 촛불이 있던 자리로 순간 이동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촛불이 자연적으로 꺼져버리면, 멧돼지로 변한 시전자는 외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설화의 기원과 사회적 의미:

바비 응예뻿 설화는 밤에 마을을 배회하며 농작물을 훼손하고 도둑질을 일삼는 멧돼지에 대한 민간의 두려움과 불신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을에 발생하는 화재나 불가사의한 도난 사건의 책임을 멧돼지에게 돌리는 전통적인 민속적 해석이 괴물 설화로 발전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한, 자식까지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흑마법을 통해 부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는 교훈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운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도 더욱 재미있는 괴물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